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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정리된 숫자에서 시작한다

회계 이야기 · 2026-10-01

회계는 곧 AI가 대신하게 될 거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요. 다만 여러 가지를 직접 돌려 본 지금으로서는, 모든 자리에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 맡길 수 있고 어디부터는 아직인지, 그 선을 아는 것이 지금은 더 쓸모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는 다음에 올 말을 고릅니다

AI가 문장을 만드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티끌 모아 ○○'이라는 문장이 있으면 AI는 망설임 없이 '태산'을 채웁니다.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글에서 그 자리에 태산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AI는 틀릴 일이 없습니다.

글에서는 이 방식이 잘 통합니다. 낱말에는 뜻이 있고, 뜻이 있는 것들은 함께 쓰이는 무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글은 조금 달라져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AI가 쓴 문장은 대체로 매끄럽습니다.

숫자는 조금 다릅니다. 0부터 9까지의 조합일 뿐이라 그 자체로는 뜻이 얇습니다. 1,384,200이라는 숫자만 놓고는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럴듯한 숫자'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이 하나에 여러 개가 섞여 있을 때

많은 자료를 빨리 보는 것은 AI가 잘합니다. 그런데 차이를 찾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틀린 곳이 한 군데라면 쉽습니다. 차이가 곧 그 숫자니까요. 그런데 그 차이가 여러 개가 섞여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셋이 더해지고 하나가 빠져서 지금의 차이가 되었다면, 후보가 수천 줄일 때 그 조합을 찾는 일은 기계에게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차이가 0원이 아닌 순간,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틀렸다'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그 차이가 하나짜리인지, 여러 개가 상쇄되고 남은 꼬리인지는 사람이 하나하나 찾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AI가 자주 하는 말

여기서 AI의 성질이 드러납니다. 못 찾았을 때 '모르겠습니다'라고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빈자리를 채우도록 만들어진 도구라, 그 자리에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AI에게 차이를 물으면 이런 답을 자주 듣습니다.

"그 차이는 매출액의 0.1%밖에 안 되어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환율 변동에 따른 효과로 보입니다."

"반올림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매출이 수천억이면 0.1%는 수억 원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환율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올림 차이가 몇 천 원이 될 리도 없습니다. AI는 '차이를 설명하는 흔한 문장'을 고른 것이지, 그 차이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설명과 확인된 사실은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AI는 어디에 써야 할까

AI는 분명히 잘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원장 파일을 건네고 "이 계정의 합계를 내고 통장과 대 봐 달라"고 하면, AI는 문장을 고르는 대신 코드를 짜서 실제로 더합니다. 수천 줄을 훑어 짝이 안 맞는 줄을 골라내는 일은 사람보다 빠르고 지치지 않습니다.

이미 정리된 숫자를 보고서로 옮기는 일, 표를 그래프로 바꾸는 일, 전월 대비 무엇이 얼마나 늘었고 줄었는지 문장으로 풀어 주는 일, 반복되는 분개의 초안을 잡는 일 등 사람이 하면 오래 걸리지만 어렵지는 않은 일들을 AI가 빠르게 해냅니다.

여기서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바탕이 되는 숫자가 이미 맞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Garbage in, garbage out. 재무회계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자리도 드뭅니다. 틀린 숫자를 넣으면 AI는 틀린 보고서를 아주 빠르게,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어 줍니다. 손으로 만들었다면 중간에 '어, 이거 이상한데' 하고 멈췄을 자리를 AI는 그냥 지나갑니다.

저희가 AI를 넣는 순서

"그럼 당신들은 AI를 쓰고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저희는 순서가 있다고 답합니다.

국내 재무 · 회계 · 감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2025년 EY한영 조사에서 95%가 AI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고 97%가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도입했거나 준비 중인 곳은 28%였습니다. 하고 싶은데 못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조사가 그 성과를 가르는 것으로 짚은 것이 데이터 품질과 통제 체계입니다.

저희가 먼저 만든 것이 그 자리입니다. 자료를 모으고 검산하는 일 말입니다. 숫자를 맞추는 일은 AI보다 규칙으로 짠 코드가 더 잘합니다. AI는 회사의 문제를 푸는 도구 가운데 하나이지, 모든 것을 풀어 주는 도구는 아닙니다.

그 바탕이 서고 나서 첫 AI 기능을 붙였습니다. 보고서를 말로 그리는 기능입니다.

AI에게 숫자를 맡기지 않는 방법

'법인별 매출을 월별 추이로 보여 줘'처럼 한 줄을 쓰면 보고서가 그려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AI가 하는 일은 숫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료를 쓸지, 무엇을 행과 열에 놓을지, 어느 기간을 자를지, 어떤 그래프로 그릴지를 고를 뿐입니다. 사람이 화면에서 하나씩 골라 채우던 칸을 대신 채워 주는 것입니다.

숫자는 그 설정을 받아 늘 같은 계산 코드가 셈합니다. AI는 합계 근처에 가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두었습니다. AI가 고른 것을 실제 목록에 대어 거릅니다. 없는 자료를 지어내거나 없는 항목을 필터에 넣으면 그 자리는 버려지고, 무엇을 왜 뺐는지가 화면에 남습니다. 그래서 AI가 틀려도 숫자가 틀리지 않습니다. 빈 표가 설 뿐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말을 고르는 일'과 '숫자를 맞추는 일'을 가른다는 뜻입니다. 어떤 표를 그릴지는 말을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 표의 합계가 맞는지는 말로 고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붙일 AI 기능도 같은 기준으로 고릅니다. 차이의 원인을 먼저 짚어 주는 일, 반복되는 분개의 초안을 잡는 일, 계약서를 읽고 지급 조건을 뽑아 주는 일. 모두 사람이 확인할 초안을 내놓는 자리이지, 숫자를 확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숫자를 한곳에 모으는 일부터입니다. 통장과 법인카드처럼 재무제표에 바로 이어지는 자료는 물론이고, 매출을 이루는 거래 하나하나와 고객이 남긴 기록까지 모아 두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집니다. '사업계획 세우기 전에 봐야 할 과거 숫자 세 가지'에서 이야기한 '원가를 매출과 같은 칸으로 나누어 보기'도 결국 자료가 한곳에 모여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모을 때 함께 해야 하는 것이 검증입니다. 자료실은 파일을 쌓아 두는 곳이 아니라, 검산을 통과한 숫자만 들어가는 곳이어야 합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연결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더 자주 생깁니다. 연결이 안 맞아 한참을 뒤졌는데 알고 보니 합치기 전의 재무제표가 이미 어긋나 있던 경우가 있지요. 그 이야기는 '연결회계, 이론보다 작성이 어렵다'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마치며

AI가 재무회계를 대신하게 될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날이 오더라도 바탕이 되는 숫자를 기록하고 맞춰 두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일 것 같습니다. 루위즈는 그 일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도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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